[人사이드 人터뷰] 시각장애 딛고 17년간 시부모 간병…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밝힌 효부

입력 2015-10-30 19:54   수정 2015-11-03 09:23

삼성행복대상 수상자 박향숙 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대표

"앞이 보이지 않는 것 두렵지만 내 아픔 봐주는 이들 있어 든든해요"



[ 정지은 기자 ] 시력 잃고도 의사 꿈꿨던 어린소녀
도전조차 못하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베트남전에서 두 눈·양팔 잃은 남편과 결혼
"힘든 사람끼리 왜 사느냐" 반대 많았지만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행복이자 고마움"

"장애가 행복의 장애물이 아니면 좋겠다"
5년 전부터 사회복지사로 위기가정 상담 나서
내달 시집도 출간…"내겐 지금이 황금기"


아무리 눈을 떠봐도 세상은 어두컴컴하기만 했다. 가끔 어렴풋하게 형체만 보일 뿐이었다. 막막했다. ‘시각장애인이 혼자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반세기를 보냈다.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앞이 보이지 않아도 얼마든지 씩씩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고로 두 눈과 양팔을 모두 잃은 남편은 물론 심장병과 뇌졸중으로 쓰러진 시아버지, 시어머니까지 모두 혼자서 돌봤다. 올해 삼성행복대상 ≠렸?株瓚?받는 박향숙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공동대표(60)의 얘기다.

“몸은 힘들지만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

서울 일원동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수상을 축하한다고 인사를 건네자 박 대표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부터 내쉬었다. 박 대표는 “이런 상을 받을 만큼 세상에 공헌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정말 받아도 될까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해온 일로 상까지 받으니 마음이 무거워 한숨이 나온다”며 “앞으로는 정말 다른 사람의 행복에 도움을 주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시력과 함께 잃어버린 꿈

처음부터 앞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는 1956년 세 살 때 여름 충북 제천 외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툇마루에서 떨어져 시력을 잃었다. 당시만 해도 의료 환경이 좋지 않아 치료 한 번 제대로 못 받고 1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박 대표가 앞을 못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은 서울맹학교를 다니면서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일이 많았거든요. 아픈 사람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어요. 그런데 맹학교 선배들은 ‘우리는 그런 거 못해’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들었던 얘기 중에 가장 슬펐던 말은 ‘네가 할 수 있는 건 안마뿐이야’라는 거였어요.”

박 대표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게 박 대표 인생에서 겪은 첫 번째 좌절이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내 꿈을 펼치기 위해 도전조차 한 번 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정말 힘들었다”며 “뭐든지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감이 꺾여서 한동안 눈물 바람을 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맹학교 선배나 친구들은 하나같이 시각장애인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안마가 전부라고 말했다. 그마저도 안마사는 성희롱 등 좋지 않은 일을 겪는다는 소문이 많아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이때의 기억은 훗날 박 대표가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활동에 앞장서게 된 계기가 됐다.

박 대표는 “걱정을 하면 할수록 더 힘들기만 했다”며 “행복하게 살겠다는 목표로 ‘그래도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고 말했다. 1974년 서울맹학교 고등부 과정을 졸업한 뒤 박 대표는 안마사 자격증을 취득, 서울 신교동과 반포동의 안마원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아픔 가진 사람과 함께

인터뷰 도중 박 대표는 “사실은 남편도 같이 왔는데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남편 양지수 씨(60)는 “내 몸이 이런데도 행복하게 사는 것은 전부 이 사람 덕분”이라고 첫 마디를 던지며 박 대표의 옆자리에 앉았다. 양씨는 1970년 베트남 전투에 참가했다가 사고로 두 눈과 양팔을 모두 잃었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1977년. 양씨가 장애를 얻은 이후였다. 양씨는 성당에서 박 대표를 처음 만났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와 마음 씀씀이가 곱고 예뻐 박 대표에게 반했다고 했다. 이들은 약 3년간 연애하다 1979년 10월 결혼했다.

주변에선 반대와 우려가 많았다. “앞도 안 보이는 사람 둘이 어떻게 사느냐”는 말도 심심치 않게 들었다. 박 대표는 ‘자기 ?하나도 감당하기 힘든데 뭐하러 힘든 사람끼리 같이 사느냐’는 말이 가장 가슴에 맺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박 대표는 이렇게 대답한다며 웃었다.

“물론 많이 불안해 보인다는 거 압니다. 하지만 그렇게 내가 가진 아픔을 알아주는 상대방이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데요. 물리적인 불편함은 더 클 수밖에 없지만 정서적으로는 큰 힘이 됩니다.”

돕고 배려하며 키운 가족사랑

“아픈 사람이 얼마나 아픈지는 아픈 사람이 가장 잘 안다”며 박 대표는 손을 더듬어 양씨의 등을 어루만졌다. 그 손길에 양씨의 검은색 선글라스 아래로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양씨는 “아내가 없었다면 행복을 모르고 살았을 것”이라며 “이렇게 고마운 사람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다”고 덧붙였다.

1991년 시아버지가 심장병과 뇌졸중으로 쓰러지자 박 대표는 자진해 간병했다. 안마사를 하며 익힌 안마는 물론 목욕을 도우며 시아버지를 극진히 돌봤다. 그렇게 2008년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17년간 시아버지 곁을 지켰다. 2006년 시어머니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도 2년간 병수발을 들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배려하고 지지해주며 살고 있다. 양씨가 각막이식 수술을 일곱 차례나 실패했을 때도 박 대표는 한결같이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해서 행복하다”며 그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두 사람에겐 두 명의 자녀가 있다. 36세 아들은 신한카드에 다니고 있다. 33세 딸은 어린이집 보육교사로 일한다. 박 대표는 자녀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직접 지도했다. 그때만 해도 점자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때여서, 주변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면 그걸 점자로 찍어 책으로 만들어 매일 읽어줬다. 박 대표는 “장애 부모라고 업신여길까봐 더욱 자녀 교육에 애썼다”며 “특히 너희 아버지는 국가유공자이고 자랑스러운 분이니 장애가 있는 게 창피한 게 아니라는 점을 항상 강조했다”고 말했다.

“학교 축제에 시낭송 대회가 있는데 엄마가 해줘”라는 말을 들었을 땐 감격스러워 눈물이 났다고 했다. 박 대표는 자녀들의 학교 일일교사로 참여,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도 적극 나섰다. 가족 간 사랑은 더 두터워졌다. 이웃들은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새로 품은 두 가지 꿈

박 대표에게는 두 가지 꿈이 있다. 하나는 시각장애인들이 꿈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시각장애인도 행복할 수 있다는 꿈을 꾸게 해주고 싶어요.”

박 대표는 시각장애인을 도와주는 사회복지사가 되기로 결심, 2010년 한양사이버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경기 시흥 거모동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서 가족상담 전문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며 시각장애인 위기 가정을 상담하고 있다. 보통 시각장애인 부부 사이에는 불화가 많다고 박 대표는 설명했다. 파경 위기에 처했던 20여개 가정이 박 대표와 상담 후 행복을 되찾았다.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대표로는 2010년부터 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박 대표는 “여성 시각장애인들이 위축되지 않고 꿋꿋하게 잘 苡튼?수 있게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꿈은 시인이다. 박 대표는 다음달 시집 ‘물빛새’ 출간을 앞두고 있다. 박 대표는 2010년부터 시를 썼다. 박 대표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면서 받는 제약이 많은데 시에는 제약이 없더라”며 “내 마음대로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게 좋아서 열심히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얘기를 듣는 양씨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그는 “열심히 살면 복이 온다는 말이 이런건가 보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인생에 꽃이 핀 것 같다”며 “열심히 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삼성행복대상은

효 실천·여성 권익·사회 공익 기여자 격려

삼성행복대상은 여성 권익, 사회 공익에 기여하고 효행을 실천한 인물에게 주는 상이다. 이들을 찾아 널리 알리고 격려해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취지에서다.

이 상은 ‘효 실천’ 또는 ‘효 확산’에 기여한 개인 또는 단체(가족화목상), 여성의 권익과 사회 공익에 기여한 여성(여성선도상), 학술·예술과 같은 전문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여성(여성창조상), 효를 실천한 청소년(청소년상) 등 4개 부문으로 나뉜다. 수상자에게는 각각 5000만원(청소년상은 500만원)의 상금과 상패를 준다.

삼성행복대상의 뿌리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1975년 제정한 ‘삼성효행상’과 2001년 제정한 ‘비추미여성대상’이다. 효행 실천과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증진시키겠다는 취지?하나로 모아 2013년 삼성행복대상으로 새롭게 제정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주관하고 여성가족부가 후원한다.

수상자는 부문마다 7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약 3개월간 서류 및 현장심사를 거쳐 선정한다. 올해는 가족화목상에 박향숙 한국시각장애인여성연합회 대표, 여성선도상에 김정숙 세계여성단체협의회장, 여성창조상에 안숙선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이 뽑혔다. 청소년상은 원종건 씨(경희대), 윤정현 군(부산남고), 강민주 양(광주중앙고), 전유정 양(강원 생활과학고), 황윤하 양(천안여중) 등이 받는다. 지난해보다 30% 많은 후보자가 추천돼 경쟁이 치열했다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시상식은 다음달 5일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콘퍼런스홀에서 열린다. 시상식이 끝난 뒤에는 수상자들이 강연도 할 예정이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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